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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감사함은 (살전 2 : 13-20) 19. 11. 24. 2019-11-24 08:16:11
작성자 : 온 유   조회 173, 추천 41


2019. 11. 24.  
                          끊임없이 감사함은    
                                           데살로니가전서 2 : 13-20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 고백할 때 많이 기뻐하시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교회를 세워 구원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순창제일교회도 그래서 세워진 줄 믿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총회 임원 가운데 우리교회 출신이 두 분이나 있지 않습니까?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는 아랍속담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없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연 웃고만 사는 것이 행복입니까? 지난 주 모임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교우들이 재미있고 웃기는 설교를 선호하고 있으니 그에 맞춰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가다 사막 같은 교회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찬송과 기도를  하다가 눈물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흥이 계속될 것 아닙니까?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이기를 바라는 찬양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부흥케 하신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립시다.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켰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난 주간 많이 감사하셨을 줄 믿습니다. 하루를 택하여 감사하거나 아니면 한 주간 지내며 감사하거나 하면 다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이어지는데 이처럼 감사도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별히 교회력은 대강절 곧 12월 첫 주로 시작하여 11월 마지막 주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주일입니다. 감사가 이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이어지는 교회를 찾아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그랬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감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편지의 시작을 감사하여 기도한다 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참 좋은 교회가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도 데살로니가교회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자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거기에 머물 것이 아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감사한 내용도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한 회기를 정리하는데 참 좋은 내용이어서 선택했습니다. 교회와 개인이 마음에 두고 신앙생활 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믿는 자들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13절 중간에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라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일행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앙으로 받아야 가능합니다. 광야교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모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뿐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살아 있는 동안 수 없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오랫동안 노예로 살았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바꾸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일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모세 이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워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어야 옳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신 후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감사히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13절 중간에 “진실로 그러하도다.”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은 자신의 말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말씀 받는 태도가 옳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문법적으로 따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문법적으로 틀림없어야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성경을 비판하며 난도질한 신학자도 있습니다. 성경 안에 마귀의 말도 들어 있다고 그것을 삭제하자고 나섰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욥기를 놓고 사람의 말이 너무 많으니 하나님의 말씀만 남겨두자는 이들도 있습니다. 복음서를 난도질한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비신화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산상복음만 남겨야 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으나 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직접 모으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멘으로 받으라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세나 여호수아 그리고 에스라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아멘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온 우주 다스림을 믿는 것입니다. 13절 중간에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으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창조 때부터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들기 위해 실험을 하시거나 리허설을 하시거나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빛이 있으라.” 말씀만 하셨는데 엄청난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둘째 날 궁창은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우주보다 더 큰 세계가 아닙니까? 그것을 나누기 위해 특수기계를 사용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궁창이 있으라” 말씀만 하셨을 뿐입니다. 우주의 모든 역사가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골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였습니다. 육과 영의 수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원에서는 병을 고친다고 이상한 행동을 다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으면 놀라운 치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하나님 말씀이 역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기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강사님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읽기를 강조했습니다. 집회 기간에 일독을 하면 상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 기간에 일독하는 일은 좀 무리였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어떻게 하면 일독을 하고 상품을 받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빨간 색연필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어 나갔습니다. 다행히 일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사님은 그 집사님의 성경을 펼쳐 보이며 칭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말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한 번 읽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해마다 일독하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할지라도 주의 종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삶 속에서 역사가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외칠 때 정말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자들을 많이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능력으로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유대의 교회를 닮아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라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에 있는 교회 곧 예루살렘 교회나 다른 교회들을 본받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교회적으로는 다른 교회의 좋은 점을 본받아 잘못된 점을 고쳐야 옳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이들의 좋은 점을  본받아 잘못된 점을 고쳐야 옳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내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못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일을 잘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찬양을 안 하는 사람들이 찬양하는 사람들을 놓고 수근 거립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도를 못하도록 방해를 놓습니다. 경건에 관한 일이라면 좋은 점들을 본받아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들의 모델이었습니다. 그 모델교회를 데살로니가 교회는 닮아가려 애를 썼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는 교회가 아닙니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유대교회의 좋은 점을 본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경건의 모범이 되는 교회들을 찾아서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고난 중에도 신앙을 굳게 지키려 하는 것입니다. 14절 중간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많이 받았는데 잘 참고 견디며 신앙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 모습은 유대교회 곧 예루살렘 교회와 비슷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하여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너무 강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총독부에서는 다락방 공동체가 로마제국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어서 반역으로 몰았습니다. 더 심한 고난은 그들의 동족 곧 유대인들에게서 받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최고 치리기관 공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래도 신앙으로 잘 참고 견디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데살로니가 교회도 동족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았으나 신앙으로 잘 참고 견디었습니다. 바울은 너무 대견해서 감사를 올린 것입니다. 신앙으로 고난을 참고 견디어 감사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구원 없는 자들을 전처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15절에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라 하였고 16절에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없는 유대인들이 구원이 있는 교회에 많은 고통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없음을 대부분 몰랐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니까 당연히 구원이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 몰랐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다는 사실과 예수님 믿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렇게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못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크게 깨달은 후 고통이 너무 심했지만 올바른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랬습니다. 동족으로부터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이 있었기에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굳건히 믿어 감사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눅12:51) 하셨습니다. 이상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구원의 길에 방해자들이 있어 험난함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볼 때 나는  만족 하였네”가 있습니다. 후렴은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예수 향기 날린다. 할렐루야 아멘”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부터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꽃이 백합화였습니다. 그 꽃향기가 아주 진하기 때문입니다. 화단에 심겨져 있으면 바람이 불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불교인처럼 속세를 떠나 있어도 크게 문제가 일어날리 없습니다. 그러나 백합화가 가시밭에 있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불면 가시가 백합화를 그냥 놓아 둘리 없습니다. 얼마나 상처를 내겠습니까? 얼마나 아픔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성가에는 바람아 불어라고 했습니다. 동남풍도 좋고 서북풍도 좋습니다. 물론 아프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진하게 퍼지지 않겠습니까? 신앙이 아니면 부를 수 없는 찬양입니다. 역경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본 받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강림을 더욱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19절 중간에 “그가 강림하실 때”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 재림하실 때를 기대하며 사소한 오해를 풀고 신앙으로 이기라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해 놓고 자주 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 아닙니까? 얼마든지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오해가 아주 많습니다. 서로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바울 사이에도 그랬습니다. 17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항상 데살로니가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축복도 계속되었습니다. 18절에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라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신앙으로 자라는 모습은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함께 맞이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참고 견디자고 하였습니다. 오해가 풀리면서 기쁨으로 같이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서로서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보다 그 날에 소망과 기쁨을 두는 것입니다. 19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에다 소망과 기쁨을 걸었다는 말씀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소망이란 소원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그와 비슷한 질문을 심방 때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건강을 1순위로 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의 승진을 소망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사업의 성공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고, 자녀들의 합격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와 비슷한 소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많이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던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아주 많이 기뻐할 것입니다. 바울처럼 주의 일에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보상을 충분히 받을 것입니다. 그 날의 소망과 기쁨을 생각하며 더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면류관이 약속되었으므로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19절 중간에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자랑스런 면류관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그렇게 기다려졌던 것입니다. 바울처럼 면류관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앞에 설 때를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나름대로 면류관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신 분들은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시카고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어느 주일 면류관에 대한 설교를 아주 열성적으로 하였습니다. 부인 하나가 그 설교를 듣고 목사님께 “목사님은 장차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주의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네 저는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저는 목사님이 예수님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의 일 하는 줄로 알았네요.” 하며 실망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어서 “저의 면류관을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 바치며 경배할 것입니다.” 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면류관 받을 수 있다면 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고난보다 미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로 하여금 끊임없이 감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이 믿는 자들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온 우주 다스림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능력으로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다음에 유대의 교회를 닮아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도 신앙을 굳게 지키려 하는 것입니다. 구원 없는 자들을 전처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본 받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강림을 더욱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그 날에 소망과 기쁨을 두는 것입니다. 면류관이 약속되었으므로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현재 고난보다 미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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