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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계 21 : 1-8) 19. 12. 15. 2019-12-14 10:13:43
작성자 : 온 유   조회 286, 추천 48


2019. 12. 15.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요한계시록 21 : 1-8    

     세상에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모두 다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데교회에 보내신 편지를 보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하셨습니다. 죽은 교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를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 8조에 “교회는 두 가지 구별이 있으니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이다. 보이는 교회는 온 세계에 산재한 교회이고,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만 아시는 교회이다.”라 하였습니다. 온 세계에 산재한 교회들의 영적 상태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열 처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등만 준비한 자들과 등과 기름을 준비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신랑 곧 예수 그리스도가 더디 오시기에 졸며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말 살아있다면 열심히 경건생활 특별히 기도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의 요구 사항이 많았습니다. 옷, 신발, 책, 스키 등을 사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들이 불행하게도 죽으니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찮아도 살아있는 아들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 살아 있는 모습 보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많이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립시다.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기념주일입니다. 해마다 주님께서 보내신 편지들을 받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내용 곧 일곱 교회에 보내셨던 편지들을 한 통씩 받아보곤 하였습니다. 35년이 넘었으니 같은 편지를 네댓 번씩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편지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서 8절까지를 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보여주셨기에 우리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교회들은 수난을 많이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 곧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는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로마제국은 더 많이 싫어했습니다. 기독교를 말살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기도를 올렸겠습니까?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큰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뒤에서 들렸습니다. 요한이 몸을 돌이켜 보니 일곱 금 촛대가 보였고, 그 사이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고, 가슴에 금 띠 하셨는데 눈은 불꽃 같으셨던 것입니다. 종말에 대하여 그리고 천국에 대하여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새 하늘가 새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신앙생활 해아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기에 알아보며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예루살렘에 살아야 합니다.    

    2절 “내가 또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도록 건설된 도시입니다. 원래 예루살렘은 IR(도시)와 SHALOM(평화)가 합성되어 평화의 도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여부스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산악지대여서 이스라엘도 쉽게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정복하여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삼으며 예루살렘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 새 예루살렘’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인간들이 살고 있는 하늘 그리고 땅과 다른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비슷하다면 굳이 ‘새’를 붙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 예루살렘도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건설하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을 약속하셨는데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 예루살렘을 약속하셨습니다. 신령한 사람들이 살도록 건설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사람들로 바뀌어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하면서 새 예루살렘을 더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이 아름다운 신부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2절 중간에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신부처럼 단장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오해하기 쉬운 신랑과 신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혼인잔치가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신랑이 되고 성도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도 있지 않습니까?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처럼 예수님과 일대 일 혼인을 하는 줄 아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신랑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 곧 교회전체가 신부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전체라 하면 사도들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그 신부를 보았는데 새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원래 신부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미장원에서도 신부화장이라면 특별하게 할 것입니다. 그 단장은 지금의 교회생활에서부터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더러움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깨끗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마다 새 예루살렘에 참여함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천국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들과 거주하는 것입니다. 3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일찍이 에스겔이 예언했는데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여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37:26)라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성막 세울 때 그 그림자를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성막을 중심으로 세 지파씩 동서남북에 진 치도록 하였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사도요한은 그 모두를 실제적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하며 놀랐겠습니까? 중요한 사실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오늘의 교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교회생활을 하나님 모시고 하듯 해야 옳습니다. 본문의 하나님 장막은 곧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살 수 있도록 교회생활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웃에 무신론자가 살고 있었는데 기회만 있으면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욕하기 일쑤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그럴 때마다 마음이 상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을 만났는데 얼마나 모욕을 하는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저 사람을 언제까지 저대로 두시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런 기도라도 올리니 울화가 좀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과거 자신의 방탕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탕생활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방탕생활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없애는 것이 낫다며 처리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자신이 많이 교반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를 했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도 밖에도 더러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얼마든지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도 새 예루살렘 백성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이니 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거룩한 성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워진 세계에서 많은 혜택들을 누려야 합니다.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데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말씀입니다.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을 낙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낙원에서 살아보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에덴동산보다 훨씬 더 신령한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있었는데 새 예루살렘에는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간교한 뱀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옛 뱀이라 하였습니다. 마귀요 사단이라 하였습니다. 불못에 던져졌기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유혹당할 염려가 없습니다. 또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가 없습니다. 생명강이 흐르고 좌우에 생명과가 다달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감사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그 광경을 보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평강의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세계를 기대하며 교회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니 위로받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이 사라지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옛 하늘 그리고 옛 땅은 눈물이 너무 많았습니다. 누구든 세상에 태어날 때 울기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눈물을 아주 많이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비교하면 그렇게 많이 흘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눈물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망은 사람에게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젊은 청춘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의 관을 끌어 앉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파도 눈물을 흘리기 마련입니다. 오래 전 병원에 갔었습니다. 젖먹이 아기가 아픈데 그 연약한 팔에 주사기 찌르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그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사망도 없고 아픔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눈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받았던 괴로움에 위로를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신령한 교회에서 하나님 위로를 많이 받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수를 마시므로 목마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목마름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목마름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갈증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물론 육체에도 갈증이 있습니다. 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디 육체의 갈증만 있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여인이 물 길러 우물로 나왔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습니다. 금방 갈증에 허덕이는 여인임을 알아보셨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며 갈증을 해결하여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괴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더욱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생명수를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갈증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생명수 마시고 만족함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래 전 교우 한 분이 계란을 가져오셔서 “목사님 이 계란은 양계장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더 튼튼합니다. 계란은 원래 노른자가 잘 되어야 건실 한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계란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 잘 되어야 할 것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의 건강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하였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여러 사업 벌이면서 잘 되기를 소망하는데 정작 영혼들이 잘못되어 시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업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지속되겠습니까? 요한은 그 세계를 보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셨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한 사업의 성공입니까? 그보다 영혼들이 잘 되는 일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신령한 세계에서 위로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혼의 건강은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까지 교회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훈련을 제대로 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기업을 상속으로 받아야 합니다.    

     7절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하늘가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을 아들에게 상속시키시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신령한 세계를 기업이라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상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 날에 그 상속 받지 못하고 통곡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롯유다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자 공동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비슷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는다며 세례까지 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 기업을 포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기는 자’를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편지를 보십시오. 마지막에 ‘이기는 자’를 교회마다 넣었습니다. 본문에도 나아 있지 않습니까? 교회의 생활에 충실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끝까지 남아 하나님의 상속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마귀들이 있으므로 신앙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거짓말 하는 자들은”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붙잡혀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마귀에게 붙잡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노리고 있다 하였습니다. 자기 정욕을 쫓아 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신앙을 철저히 지키는 자가 바보스럽게 보이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리스도인이면서 점술가 곧 무당 찾아가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반면에 무당의 가르침 따르느라 몸과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리라 하면서 합장을 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바보스럽다고 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우상 숭배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이나 과거 신사참배 거부한 사람들은 정말 바보입니까? 지금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없다면 분명 그들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을 기대하며 그 유혹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유황불이 있으므로 이탈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8절 중간에 “모든 자들은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을 받지 못한 마귀의 사람들은 유황 불속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유황불 못과 둘째 사망은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 사망도 너무 무서웠는데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해 보시가 바랍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알면 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과 너무 비교되는 곳이 아닙니까?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아픔이 있어 어쩔 줄 모르는 곳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곳에 몰아넣지 않으시려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어 교회에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가 다락방 공동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권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보니 달라졌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께서 권능을 주셨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교회가 변질되고 있습니다. 분명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육체로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상속자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머리와 몸 그리고 신랑과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워지셨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예루살렘에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아름다운 신부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들과 거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거룩한 성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에 새로워진 세계에서 많은 혜택들을 누려야 합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니 위로받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생명수를 마시므로 목마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훈련을 제대로 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로 기업을 상속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귀들이 있으므로 신앙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유황불이 있으므로 이탈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상속자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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